목    차

 

서장(序章)  침략전쟁을 일으키는 왜곡된 역사교육

제1절  역사를 잃으면 영토도 잃고 자기도 잃는다

제2절  정복국가 금(金)ㆍ청(淸)나라를 세워 중국을 식민지배해 온 여진ㆍ만주족은 한국인과 같은 종족

 1. 우리 민족의 명칭은 한민족이 아닌 천손족(天孫族)

 2. 고구려인과 동일한 언어를 사용하던 말갈(여진ㆍ만주)족

 3. 말갈(여진ㆍ만주)족은 고구려ㆍ백제인의 후예들

제3절  4차례에 걸친 수(隋)나라의 고구려 침략 원인

 1. 고구려에 대한 수ㆍ당의 71년 전쟁 도발과 부정되어 온 30만 대군을 몰살시킨 위대한 승리

 2. 고구려 침공전의 고구려와 수나라의 관계

 3. 고토 수복을 명분으로 한 수(隋)나라의 고구려 침공

 4. 고구려의 요서지역 선공은 조작된 기록

제4절  고구려 영토는 중국의 고토이므로 당(唐)나라에 복속시켜야 한다는 중국인들

제5절  고토 수복을 명분으로 한 당(唐)나라의 고구려 침공

제6절  일본에 의해 조선과 대한제국의 침략 명분으로 악용된 임나일본부

제7절  왜곡된 역사인식은 중국과 일본의 한반도 침략을 부를 수밖에 없다

 1. 일본의 한반도 침략을 불러 왔고 불러올 역사왜곡

 2. 중국의 침략을 불러왔고 또 불러올 역사왜곡

 3. 중국의 역사 왜곡을 돕는 한국의 역사학계

  1) 사대주의사학파

  2) 조선총독부사학파

  3) 사대주의ㆍ조선총독부사학파를 극복하려는 민족사학파

  4) 중국의 침략을 불러왔고 불러올 역사학자들

제8절  민족의 멸망을 막기 위하여

 

제1장  한반도 소국으로 왜곡되어 온 중국을 식민지배한 백제사 연구

제1절  『양서(梁書)』에 기록된 백제의 식민지

제2절  『송서(宋書)』에 기록된 백제의 식민지

제3절  『남사(南史)』의 백제식민지 기록

제4절  『통전(通典)』의 백제식민지 기록

제5절  백제의 중국 지배에 대한 기존 학설

제6절  백제식민지 요서군과 진평군 등의 위치 연구

 1. 요서군(遼西郡)의 위치

 2. 진평군(晉平郡)의 위치

  1) 송(宋)나라 진안군(晉安郡)에서 개명된 진평군(晉平郡)

  2) 서진(西晉)때에 건안군에서 분리된 진안군(晉安郡)

  3) 삼국시대 오(吳)의 회계군에서 분리된 건안군(建安郡)

  4) 백제의 식민지 진평군(晉平郡)의 위치

 3. 백제식민지 광양ㆍ광릉ㆍ청하ㆍ서하군 등의 위치

  1) 백제의 식민지 서하군(西河郡)의 위치

  2) 백제의 식민지 광양ㆍ광릉ㆍ청하군의 위치

  3) 백제식민지가 중국에 있었음을 실증해 주는 백제와 북위의 전쟁 기록

  4) 백제식민지가 중국에 있었고, 위만조선과 낙랑군 등의 한사군이 한반도에 존재하지 않았음을 실증해 주는

     낙랑태수와 조선태수

 4. 중국을 식민지배한 백제를 입증하는 유물ㆍ언어ㆍ풍습

제7절  백제는 수많은 제후왕들을 거느린 황제국

제8절  중국에 있는 영토를 잃고 한반도로 철수하는 백제

제9절  원삼국시대, 삼한시대에 대한 소고

 

제2장  한반도 북부와 압록강 북쪽의 소국으로 왜곡되어 온 대제국 고구려의 실제 영토 크기 연구

제1절  고구려 강역이 축소 왜곡된 이유

제2절  축소ㆍ왜곡된 건국 초기의 고구려 영토

 1. 축소ㆍ왜곡된 건국 초기의 고구려 서ㆍ북부 영토

  1) 모본왕의 중국 정벌로 본 고구려 초기의 서부 영토

  2) 태조대왕의 요서지역 축성으로 본 건국 초기의 고구려 서부 영토

  3) 중국 요동ㆍ요서군과 고구려의 요동ㆍ요서

  4) 요동군 위치로 본 건국 초기의 고구려의 서부 영토

 2. 축소ㆍ왜곡된 고구려의 동부 영토

  1) 읍루(말갈)를 복속시킨 추모왕 고주몽

  2) 북옥저를 통합한 추모왕 고주몽

  3) 동부여를 통합한 대무신왕

  4) 동옥저를 통합한 태조대왕

  5) 서옥저, 동옥저, 북옥저, 읍루, 동부여의 위치 고증

  (1) 동옥저의 위치

  (2) 읍루(挹婁)와 동부여의 위치

  (3) 북옥저의 위치

  6) 『삼국사기』와 『후한서』『삼국지』의 기록 차이

제3절  축소ㆍ왜곡된 고구려 남부 영토

 1. 축소ㆍ왜곡된 고구려 전기의 남부 영토

 2. 개마국을 통합한 대무신왕

 3. 낙랑국 위치로 본 고구려 초기의 남부 영토

  1) 낙랑군(樂浪郡)으로 오인되어 온 낙랑국(樂浪國)

  2) 한나라 낙랑군과 별개의 지명인 고구려 낙랑

제4절  한사군과 요동군의 위치로 본 고구려 전성기의 서부 영토

제5절  부여 영토 위치로 본 고구려 서북부 영토

 1. 『사기』「화식열전」의 기록으로 본 부여의 위치

 2. 현도군의 위치로 본 부여의 영토 위치

 3. 『신당서』와 『자치통감』으로 본 고구려 서북부 영토

제5절  축소ㆍ왜곡된 고구려의 북부 영토

제6절  현도군 고구려현과 고구려와의 관계

 

제3장  잃어버린 1,000년 제국 부여를 찾아 가기 전에

제1절  한(漢)나라 황제만 사용할 수 있는 옥갑을 중국 황제로부터 상납 받아 사용하는 부여의 제왕들

제2절  부여의 한문표기

제3절  북부여, 동부여, 후기 부여, 졸본부여, 남부여

제4절  부여(夫餘) 건국에 관한 기록들

제5절  고구려 건국사 관한 기록들

제6절  부여사가 부정ㆍ축소되어 온 이유

제7절  사라져버린 북부여ㆍ후기 부여 1,000년 역사

 

제4장  고구려 시조 주몽으로 왜곡되어 온 후기부여 동명왕의 건국 기록 연구

제1절  동명왕의 부여 건국에 관한 서기 88년의 기록

 1. 『논형(論衡)』「길험편(吉驗篇)」의 기록 원문

 2. 후기 부여 동명왕의 탄생 기록

 3. 후기 부여 동명왕의 성장 기록

 4. 후기 부여 동명왕의 탈출 기록

 5. 『논형』의 동명왕에 대한 기록 종합 해석

 6. 동명왕이 왜 후기 부여의 시조인가?

 7. 후기 부여를 건국한 동명왕은 누구의 자손인가?

 8. 『논형(論衡)』「길험편(吉驗篇)」기록의 신뢰성 문제

제2절  『위략』의 후기 부여 동명왕의 건국 기록

제3절  『수신기』의 후기 부여 동명왕의 건국 기록

제4절  『후한서』의 후기 부여 동명왕의 건국 기록

제5절  『양서』의 후기 부여 동명왕의 건국 기록

제6절  『북사』의 후기 부여 동명왕의 건국 기록

제7절  『수서』의 후기부여 동명왕의 건국 기록

제8절  『법원주림』의 부여 동명왕의 건국 기록

제9절  연남생묘지의 후기 부여 동명왕의 건국 기록

제10절  『통전(通典)』의 부여 동명왕의 건국 기록

제11절  후기 부여를 건국한 동명왕의 모국과 동명왕이 건넌 강은 어느 강일까?

 1. 『위략(魏略)』의 오기(誤記)

  1) 동명왕의 모국 이름을 달리 기록된 이유

  2) 동명왕이 건넌 강 이름이 달리 기록된 이유

 2. 『수신기(搜神記)』의 오기(誤記)

 3. 「후한서(後漢書)」의 오기(誤記)

 4. 『양서(梁書)』의 오기(誤記)

 5. 『수서(隋書)』의 오기(誤記)

제12절  동명왕에 대한 한국 측 기록들

 

제5장  후기 부여의 시조 동명왕(동명성왕)으로 조작되어 온 추모왕 주몽의 고구려 건국 기록 연구

제1절  고구려 건국에 대한 광개토대왕비 비문 연구

 1. 광개토대왕비의 고구려 건국 기록 원문

 2. 고구려 시조 고주몽은 동명성왕이 아니라 추모왕

 3. 「북부여 고토 수복」을 국시로 내건 고구려 건국

 4. 해모수의 아들로 조작된 하느님(하나님)의 자손 고주몽

 5. 망명 과정으로 변조된 추모왕 고주몽의 영토 순시

 6. 추모왕 고주몽의 고구려의 건국

 7. 고구려인들의 사후세계관

 8. 광개토대왕비의 고구려 건국 기록 종합해석

제2절  모두루묘지의 고구려 건국 기록 연구

제3절  연남생묘지의 고구려 건국 기록 연구

제4절  『위서(魏書)』의 고구려 건국 기록 연구

 1. 『위서(魏書)』의 고구려 건국 기록 원문

 2. 『위서(魏書)』의 고구려 시조 고주몽의 탄생 기록

 3. 『위서(魏書)』의 고구려 시조 고주몽의 성장 기록

 4. 『위서(魏書)』의 고구려 시조 고주몽의 탈출 기록

 5. 『위서(魏書)』의 고구려 시조 고주몽의 건국 기록

 6. 『위서(魏書)』의 고구려ㆍ동부여 통일 기록

 7. 『위서(魏書)』의 고구려 건국 기록 종합 해석

제5절  『주서(周書)』의 고구려 건국 기록

제6절  『북사(北史)』의 고구려 건국 기록

제7절  『수서(隋書)』의 고구려 건국 기록

제8절  『통전(通典)』의 고구려 건국 기록

제9절  주몽의 탈출 방향으로 본 부여의 위치

 

제6장  잃어버린 1,000년 제국 부여의 역사를 찾아서

제1절  부여가 서기전 222년 이전에 건국된 국가임을 증언하는 『사기』「화식열전」

제2절  동명왕의 부여 이전의 부여는 어떤 왕조였을까?

제3절  동명왕이 건국한 부여 이전의 국가 북부여

제4절  『삼국유사』『삼국사기』에 숨겨진 북부여의 건국년도를 찾아서

 1. 고구려의 시조 추모왕 고주몽의 출생년도

 2. 추모왕 고주몽의 출생년도로 본 동부여 금와왕의 출생년도

 3. 금와왕의 출생년도로 본 동부여의 건국년도와 해부루왕의 출생년도

 4. 해부루왕의 출생년도로 본 후기부여의 건국년도와 동명왕의 출생년도

 5. 해부루왕의 출생년도로 본 해모수왕의 북부여 건국년도

 6. 『사기』「화식열전」의 기록으로 본 북부여의 건국년도

7. 조작된 기록 속에 숨겨진 해모수왕의 북부여 건국년도

제5절  고구려 시조로 조작된 동명왕과 고구려의 초기 국호 졸본부여

제6절  북부여가 중국 사서에 등장하지 않는 이유

제7절  북부여의 멸망과 동부여의 건국

제8절  동부여 금와왕의 탄생

제9절  부여로 오인되어 온 동부여의 멸망

 

제7장  북부여ㆍ후기 부여 1,000년 역사를 말살시킨 고구려 건국 기록 연구

제1절  『삼국사기』의 고구려 건국 기록 원문

제2절  동명성왕으로 변조된 고구려 시조 추모왕

제3절  자식을 얻기 위해 제천제를 지내는 전통

제4절  북부여 역사를 말살하기 위한 역사 왜곡

제5절  고구려 건국신화를 조작시켜 360년의 북부여 역사를 말살시킨 『삼국사기』의 기록

 1. 고구려 건국시조 주몽의 탄생신화 원문해석

 2. 고구려 건국시조 추모왕 주몽의 아버지로 왜곡되어 온  단군조선의 후계왕조 북부여의 시조 해모수

제6절  추모왕 고주몽의 성장

제7절  후기 부여를 건국한 동명왕이 건넌 강을 고구려를 건국한 추모왕 고주몽이 건넌 강으로

       변조시킴으로써 후기 부여의 건국사는 말살되고

 1. 추모왕 고주몽의 도강(渡江)에 관한 『구삼국사』와 『동명왕편』의 기록 해석

 2. 고주몽의 도강(渡江)에 관한 『삼국사기』의 기록 해석

 3. 고주몽의 도강(渡江)에 관한 『삼국유사』의 기록 해석

 4. 동명왕의 후기 부여 건국사를 말살한 『삼국사기』, 『삼국유사』,『구삼국사』,『동명왕편』의 기록 연구

  1) 고구려 건국 시조 주몽의 시호를 동명왕으로 왜곡

  2) 후기 부여의 시조 동명왕이 건넌 강을 고구려 시조 추모왕 고주몽이 건넌 강으로 왜곡

 5. 동명왕의 후기 부여 건국사를 말살한 조선총독부학파

  1) 동명왕의 후기 부여 건국사 말살

  2) 역사 기록을 조작하여 부여 건국사를 말살하는 실증사학ㆍ문헌고증학

   (1). 동명왕의 후기 부여 건국 기록을 주몽의 고구려 건국 기록으로 왜곡

   (2). 탁리ㆍ고리를 고구려로 조작하여 동명왕의 후기부여 건국사를 고구려의 건국사로 왜곡

   (3). 동명왕이 건넌 강 이름을 조작하여 동명왕의 후기부여 건국사를 고구려의 건국사로 왜곡

   (4). 역사 조작 이유

제8절  고구려의 건국

제9절  『삼국사기』의 고구려 건국 기록 종합 해석

제10절  『삼국유사』의 고구려 건국 기록 종합 해석

 

지도목차

지도1. 3세기말~5세기말의 5국시대 강역도

지도2. 후기 열국시대도(서기전 2세기)

지도3. 건국 초기(서기전 37~서기 55)의 고구려 영역도

지도4. 고구려와 수ㆍ당의 71년 전쟁 당시의 고구려 강역도

지도5.  후한(後漢)ㆍ삼국(三國)ㆍ동진(東晉)ㆍ송(宋)시대의 중국 동남지역 지도

지도6. 고구려ㆍ백제인이 요서지역의 선주민들과 동일한 문화권 출신임을 증언해주는 비파형동검 분포도

지도7. 서기 49년 고구려 모본왕의 한(漢)나라 정벌도

지도8. 한(漢)나라의 요동군ㆍ요서군과 고구려의 요동ㆍ요서 위치도

지도9. 북부여ㆍ후기 부여와 동부여 위치도

지도10. 건국 초기(서기전 37~서기 56) 고구려가 정복한 국가 위치도

지도11. 수학적 위치 고증 방법으로 밝혀낸 고구려 전성기의 서부 영토

지도12. 국사교과서 지도

 

사진 목차

사진1. 언제사망할지도 모를 부여 왕들의 장례에 사용할 수 있도록 한나라 조정에서 미리 만들어 두었다가

       부여왕의 붕어 소식을 듣자마자 부여에 받쳐야만 했던 한나라 황제만 사용할 수 있는 옥갑

사진2. 요하서쪽 지역과 요하 동쪽ㆍ한반도 지역이 같은 문화권이었음을 증언해주는 빗살무늬토기

사진3. 고구려ㆍ백제인이 요서지역의 선주민들과 같은 문화권 출신임을 증언해주는 적석총

 

표 목차

표1. 동명왕(東明王)의 후기 부여 건국 기록 분류표

표2. 고구려 건국 기록 분류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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